본문 바로가기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 자막 기술 및 도구 정리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공기관 영상자막 의무화 정책

by 알찬찬 2025. 7. 6.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모든 정보는 국민의 알 권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그 정보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면, 형식적 평등에 불과합니다. 특히 청각장애인은 영상 중심의 행정 콘텐츠에서 자막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주요 정책, 민원 안내, 재난 정보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구조적 차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 영상에 자막을 의무화하는 정책은 이러한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청각장애인의 행정 참여와 시민권 실현에 있어 매우 중대한 과제입니다.

자막은 단순한 번역 기능을 넘어서, 의사소통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로 작용합니다. 특히 2020년대 중반 이후 정부는 디지털 기반의 정책 홍보를 강화하면서 각종 공공기관이 유튜브, SNS, 홈페이지를 통해 영상을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상의 상당수가 여전히 자막 없이 배포되거나, 형식적인 자동 생성 자막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정책 취지에 어긋납니다. 본 분석에서는 공공기관 자막 의무화 정책의 법적 근거, 실행 현황, 실제 적용 사례, 기술적 한계, 그리고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구조적으로 살펴보며 청각장애인의 실질적 정보접근권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지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공기관 영상자막 의무화 정책

 

법적 기반과 제도적 흐름 '권장'에서 '의무'로의 진전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제공의 법적 근거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장애인복지법」에서 출발합니다. 해당 법률은 시청각 정보 제공 시 장애 유형에 따른 보조 수단을 포함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정보 접근성 보장을 위한 조치를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랫동안 '자막 제공 노력'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머무르며, 법적 강제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어 왔습니다. 2023년 이후 이러한 흐름에 변화가 생기며, 일부 조례 및 부처 내 규정에서는 자막을 ‘의무’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이 제작하는 모든 시청각 콘텐츠에 대해 자막과 수어를 병행 제공할 것을 권고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적절한 편의 제공’의 범주로 해석해 지자체에 권고 조치를 내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2024년 말 정보접근성 평가 항목에 ‘영상 자막 여부’가 본격적으로 포함되면서 가시화되었습니다. 현재는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실적을 평가받고 있으며,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자체 조례를 통해 의무 조항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 자체에 자막 의무화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여전히 법적 구속력의 공백이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현장 실행 실태 자막 품질과 제작 체계의 불균형

자막 의무화가 제도적으로 명문화되고 있는 반면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자막 제작의 수준과 실행 체계에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조사 결과 자막이 아예 제공되지 않는 영상도 여전히 다수이며, 자동 자막 기능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도 상당수에 이릅니다. 공공기관 영상 중 자동 자막만을 사용하는 경우, 전문 용어, 숫자, 지역명 등에서 오타가 발생하거나 문맥이 잘못 전달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이는 정보의 왜곡을 초래할 뿐 아니라, 청각장애인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역기능이 큽니다.

또한 자막 제작을 외주업체에 위탁할 경우, 예산이나 기간상의 문제로 자막 품질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막은 단순히 음성을 텍스트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맥락에 맞는 문장 정리와 언어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고도의 작업입니다. 특히 정책 안내 영상이나 재난 관련 공지에서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자막의 정확도는 곧 정책 전달의 신뢰성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현행 제작 체계는 이를 뒷받침하기엔 구조적으로 취약한 실정입니다. 각 부처나 기관의 콘텐츠 담당자는 전문 자막 제작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가 많고, 자막 검수 시스템도 제각각이라 통일성이 부족합니다.

 

자동자막 시스템의 기술 활용의 기회와 한계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음성 인식 자동 자막 시스템이 공공기관 영상에 도입되고 있지만, 이 기술이 청각장애인의 정보 이해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자동 자막은 빠른 시간 안에 자막을 생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 정확성과 문맥 이해력은 사람의 손을 거친 자막과 비교했을 때 아직 미흡한 수준입니다. 특히 지역 방언, 빠른 말하기, 중복 발언, 정책 용어 등에서는 오인식률이 높아 사용자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공공기관은 ‘반자동 자막’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초안을 생성하면 담당자가 수동으로 검수 및 수정하는 방식이며, 자막 품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도 일정 수준의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모든 기관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제약이 따릅니다. 기술적 진보만으로 자막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자칫 자막 제공의 목적이 ‘표시’에 그치는 형식주의에 빠질 수 있으며, 사용자 중심의 품질 평가 체계와 맞물릴 때에야 비로소 실질적인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실효성 중심의 자막 제도화 전략

공공기관 영상의 자막 의무화를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령 제정이나 기술 도입을 넘어서, 자막을 ‘정보 전달의 일부’로 간주하는 행정 문화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자막 제공을 단순한 준법 항목이 아니라 정책 기획의 초기 단계부터 포함시켜야 하며, 영상 기획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자막과 수어를 포함한 접근성 계획서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둘째, 자막 제작 인력을 제도화하고, 공공기관 내에 ‘접근성 관리자’ 또는 ‘자막 책임자’를 지정하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셋째, 자막 품질에 대한 외부 평가 및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유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자막 품질 인증제’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막 완성도를 갖춘 콘텐츠에 대해서는 공식 인증 마크를 부여하고, 반대로 품질이 미달된 경우에는 개선 권고나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식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넷째, 청각장애인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 역시 중요합니다. 자막 사용자로서 청각장애인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반영할 수 있는 정기 설문조사, 인터뷰, 시청자 평가 시스템 등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자막 의무화는 기술이나 행정의 문제가 아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한 기초 장치임을 인식하는 사회적 감수성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